양림동은 낮에도 아름답지만 밤에는 특유의 서정적인 분위기가 더욱 잘 느껴진다. 조용한 골목들 사이로 오래된 집들이 많다보니 장미, 능소화, 금목서, 목련 등 집주인이 정성스레 키운 수많은 수목들을 계절마다 볼 수 있는데 햇살 가득한 시간이 아닌 달빛 아래서 구경하는 맛이 또 다르다. 퇴근하다보면 골목길 사이로 집집마다 멸치볶음이나 고등어조림 같은 저녁메뉴 냄새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고 집집마다 키우는 강아지나 길고양이들을 만나기도 한다.
무엇보다 양림동은 오래 전 부터 향토전문가들로 구성된 주민분들이(a.k.a 숨은역사고수) 마을해설사로 활발하고 활동하고 계시기 때문에 남구청에 문의만 하면 일정 이상 인원의 경우 무료로 양림동 투어를 안내받을 수 있다. 마을 곳곳에 녹아있는 역사적, 문화적, 예술적 정보들을 전문가에게 들을 수 있는 해설투어는 양림동에 온 여행객에게 꼭 추천하는 콘텐츠 중 하나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처럼 양림동은 알고 보면 더 아름다운 동네다.
다만 양림동은 "밤"에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상대적으로 적은 동네다. 오래된 동네에는 대부분 고연령세대분들이 주거하고 계시고 기독교 문화가 깊은 곳이기 때문에 맥주집이나 와인바 같은 주(酒)류 문화를 즐길만한 곳도 많지 않았다. "양림동의 밤은 낮보다 아름답다"라는 문장을 이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본 사람들은 알 수 있는데 다들 그점을 모르고 가니 아쉬움이 컸다.
2014년~2016년은 역사문화마을로서 양림동에 대한 관심이 전국적으로 조금씩 높아지고 있는 시기였고 정말 전국 곳곳에서 오는 여행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특히 당시 회사에서 가장 많이 했던 고민 중 하나는 "어떻게하면 광주에 온 여행객들의 체류시간을 늘릴 수 있을까?"에 대한 것이었는데, 그 이유는 광주에 온 여행객들이 대부분 낮시간만 주요 명소 몇곳을 둘러본 뒤 숙박은 하지 않고 전남지역으로 다시 이동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저녁에 즐길만한 콘텐츠가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광주에 좀 더 오랜시간 여행객들을 체류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야간콘텐츠에 대한 고민이 필요했다. 양림동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기획하게 된 것이 바로 양림동 야간투어인 "양림달빛투어"다. 첫번째로는 사람들과 고즈넉한 양림동의 밤을 함께 걸어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투어프로그램을 선택했다. 두번째는 밤에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콘텐츠로 살렸으면 했다. 투어를 기획할 때 우리가 주요 키워드로 삼은 것은 "밤"과 "시간여행"이었다. 양림동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해설사 투어와는 별개로 밤에만 즐길 수 있는 특별한 요소가 있는 테마투어를 만들어보고자 했다. 특히 "밤"이라는 시간의 약간 비밀스럽고, 몽환적인(경계선에 있는 듯한) 무언가 신비스러운 이미지를 활용해 판타지스러운 투어를 만들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해서 나오게된 아이디어가 "1930년대에서 시간여행을 떠나온 가이드와 함께 여행하는 양림동의 밤투어"다. 1930년대는 근대 역사와 문화가 태동하던 양림동을 상징하는 시간이다. 바로 이 1930년대로의 시간여행을 했다고 주장하는 신비로운 여성 마담L과 함께 양림동 곳곳을 돌아다니며 그녀와 얽힌 과거의 이야기들을 듣는 약간의 연극적 요소가 가미된 테마투어라고 할 수 있겠다.
투어는 다형다방에서 시작해서 양림교회, 오웬기념각, 윌슨선교사사택, 무등산전망대 등을 거치며 진행되었다. 파일럿프로그램이 2014년 12월 겨울에 한달간 진행되었는데 정말정말 날씨가 추워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ㅎㅅㅎ) 어느날은 딱 2명(커플)이 투어를 신청한 적이 있었는데 인원이 적어도 취소할 순 없어서 내가 투어객인척하고 참여해서 총 3명으로 진행했던 적이 있었다. 손님인척 열심히 투어내내 연기를 하고 잘 마쳤는데, 정리를 하던 중에 그 커플분들이 뭔가를 놓고가서 다시 오시는 바람에 좀 민망했던 적도 있다.(ㅋ)
"어느날 양림동으로 혼자 여행을 온 L이라는 여성은 뜻밖의 계기로 과거로 시간여행을 하게된다. 그는 1930년대 광주 양림동에서 "카페1930"을 운영하며 현재로 돌아올 방법을 찾는다. 그곳에서 마담L이라 불리며 근대 광주의 유명인들의 젊은 시절들을 만나게 되는데 특히 그 중에는 양림동의 시인 김현승도 있었다. 과거에서 마담L로 살아가는 삶이 조금씩 익숙해질무렵 그녀는 갑자기 훌쩍 다시 현재로 돌아오게되는데 그 이유나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자신에게 일어난 특별한 경험을 사람들에게 소개해주며 양림동 여행자들을 안내하는 그녀는 언젠가 다시 1930년대로 다시 한번 시간여행을 떠날 수 있길 바라고 있다."
투어의 전체적인 스토리는 이런식이다.(재미있을까?ㅎㅎ) 가이드인 마담L은 20대 중후반 ~ 30대 초중반 정도로 보이는 여성으로 설정했으며 근대양장이나 한복 2가지 스타일로 의상을 착용했다. 램프등이나 김현승의 시가 적힌 마담L의 편지 등 참가자들이 가이드가 이끌어가는 이 극적 요소가 있는 투어에 몰입할 수 있는 다양한 소품들도 함께 준비했다. 가이드로는 여러해 동안 다양한 분들이 참여했는데 투어의 기본대본을 바탕으로 연습과정을 거쳐 자신만의 개성을 첨가해 하나뿐인 마담L을 만들어내는 과정들이 참 인상 깊었다. 침착하고 각자만의 매력이 있었다. 재미있는 점은 이 달빛투어 기획과 운영경험들이 2015년에 진행되는 장소특정형연극 <1930모단걸다이어리>의 제작에 밑바탕이 되었다는 것이다.
양림달빛투어는 2019년까지 다양한 가이드분들이 참여하며 여러 스토리와 코스로 발전되었다. 코로나시대를 거치며 현재는 운영되고 있지않지만, 언젠가 또 양림동의 밤을 걷는 재미난 투어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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