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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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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kot_b 2023. 2. 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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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자와답사기① (가나자와시청 문화정책과)

 

가나자와 <21세기미술관>

전통과 현재의 끊임없는 공생을 고민하는 도시 : 가나자와

가나자와는 일본 이시카와현에 위치한 인구 46만의 중소 도시로 공예와 염색, 도자기, 칠기 등의 전통문화가 발달한 도시다. 예전에 문화기획아카데미를 들으면서 해외답사를 갈 기회가 있었다. 우리 랩은 5.18을 주제로 다크투어리즘, 트라우마아트 등과 관련된 콘텐츠들을 조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필리핀 민다나오로의 답사를 계획하고 있었는데 아쉽게도 현지의 사정으로 이 계획이 실행이 어렵게 됐다. 그래서 다른 랩들의 일정에 맞춰 가나자와로 답사를 가게되었고 사실 나중에는 바뀐게 더 다행이라고(?) 생각했을정도로 수많은 인사이트를 얻는 시간이었다.

 

전통공예로 유명한 가나자와이지만 이 곳은 단순히 잘 보존된 전통을 가지고 먹고 사는 도시가 아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전통과 현대를 공생시킨다. 역사와 전통을 과거에 대한 감상으로 남겨두지 않고 일상으로, 산업으로 끌어당긴다.  또한 일상과 문화예술을 절묘하게 결합시키는 그들의 능력은 매우 탁월하며 가나자와의 모든 문화 시스템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움직인다. 그들은 “문화”라는 것이 전문가 집단이 만들고 시민들은 그것을 향유할 기회를 얻는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만들어 갈 때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가나자와 시청 전경 및 내부모습

가나자와시의 문화정책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

해외 답사의 일정은 새벽 2시부터 시작됐다.  일터에서 바로 짐만 가지고 나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새벽을 지세우고 광주에서 버스를 타고 인천 공항으로, 비행기를 타고 인천에서 고마츠로, 비몽사몽의 정신인 우리가 일본에서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가나자와의 시청이었다. (이런 정신으로 공무원들의 이야기를 들어야한다니!) 첫 일정부터 정말 빡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사실 가나자와에서의 시청방문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2014년 기준 가나자와의 방문객은 연간 약 800만명이었고 코로나 시대를 거친 지금도 연간 700만명으로 집계된다.  도대체 이 조그만 중소도시에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일까?

 

가나자와가 한때 잘나가던 전통도시에 머물지 않고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창조도시로 거듭난 배경에는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문화예술을 즐기는 시민들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가나자와 시의 문화정책이다. 평화롭지만 평범했던 작은 도시에 변화를 불러온 이 ‘정책비결’을 듣기 위해 가나자와 시청을 가장 먼저 찾은 것이다.

 

시청에서 들어선 순간 모두의 눈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다. 바로 시청 건물의 벽면과 천정을 장식한 금박장식들이었다. 일본 금박공예 생산량의 99%를 차지하는 가나자와시의 명성에 걸맞게 아름답고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다들 바쁘게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시청의 로비에서 작은 탄성을 질렀다. 시청에서 카메라를 꺼내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는데 말이다.

 

시청 내 사무실에서 브리핑을 들었던 모습

이 도시의 주인공은 '시민'이다

가나자와 시의 문화정책에 대한 한 시간 남짓한 브리핑을 위해 정책과 과장이신 도오기씨와 관광과 관광과장 기노시타씨가 참석했다. 그 중 우리에게 직접 발표를 해 준 기노시타씨는 매우 유쾌한 사람이었다. 엄숙한 분위기일 것이라 예상했던 문화정책에 대한 브리핑은 오히려 영화제작발표회처럼 편안하고 즐거운 분위기였고 그들의 정책 또한 그리 거창한 것들이 아니었다.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 내는 것,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오랜 시간을 들여서 마을 만들기 계획을 짜고 시민들을 설득하는 것, 이미 우리가 그 중요성을 다 알고 있지만 인내심이 없어 기다리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가나자와 시는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해온 것 뿐이었다. 길지만 복잡한 과정 속에서 시민들은 자신들이 도시를 직접 만들어가는 존재라는 것임을 충분히 느끼고 성장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도시의 정책을 만들 때 이곳에 살아가는 주인공이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시민이다” 라고 명백하게 말할 수 있는 신념이 지금의 가나자와를 만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과연 한국에 “우리는시민을 생각하지 않고 도시의 정책을 만든다” 라고 말하는 공무원이 누가 있을까? 누구나 다 시민을 위한 정책이라 할 것이다. 전통공예의 도시라고 하는 가나자와이지만 전통예술을 전공한 지역의 젊은이들이 평범한 샐러리맨의 월급을 받는 일자리를 얻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고 한다. 그들이라고 문화예술로 도시 전체가 먹고 사는 특별한 해결책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시민 스스로가 문제의 해결을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제안하고 기획해볼 수 있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만큼 오랫동안 다양한 시행착오를 거치며 도시의 문제들을 함께 해결해왔기 때문이다. 

 

기노시타씨는 발표하는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았고 너무 구체적이어서 난감했을 많은 질문들에도 단순하고 명쾌하게 답해주었다. 가나자와 시의 문화정책에 대한 확신과 자부심, 그리고 삶에 대한 즐거움이 묻어나는 듯한 그의 표정과 말투는 오히려 너무 간단해서 부러웠던 그들의 문화정책만큼이나 인상적이었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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