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나”를 위한 취향공동체
각종 악재에도 불구하고 영원할 것 같았던 페이스북(Facebook)의 아성이 눈에 띄게 무너지고 있는 요즘, 과연 페이스북을 이을 넥스트플랫폼(Next Platform)이 무엇일까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 유튜브(Youtube)의 무서운 상승세를 열렬하게 찬양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동영상이라는 콘텐츠의 특성을 생각하면 그 한계도 명확하다는 반론도 깊다. SNS의 피로감에 대해 토로하는 사람도 많은 요즘, 각종 온라인 채널을 통해 나와 일면식도 없는 지구상 모든?!?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다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좀 더 내 자신에게,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집중하며 살 순 없을까?”
이런 이유 때문인지,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다시금 소규모 커뮤니티 문화가 유행하고 있다. 이른바 “취향공동체”다. 취향공동체란 비슷한 관심사를 매개로 만들어진 취향/취미공동체를 뜻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고, 이를 바탕으로 소통하는 새로운 커뮤니티 문화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동호회를 기반으로 한 여러 “모임문화”는 이미 오래전부터 한국사회에 존재해 왔다. 하지만 최근 주목 받고 있는 취향공동체는 취미의 종류가 좀 더 전문화되고 세분화된다는 특징이 있다. 과거에 주로 친목을 위해 만들어 졌던 모임들과는 차별된다. 학교나 직장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한 정형화된 모임문화에 실증을 느낀 젊은 세대들을 중심으로 새롭게 주목을 받는 추세다. 수제 맥주를 공부하고 직접 만들어 보는 수제맥주모임,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함께 읽고 출판을 목적으로 글을 쓰는 독서클럽, 베트남 요리를 배우는 쿠킹 클래스 등 그 종류도 참여방법도 가지각색이다. 대부분 1회성 보다는 회원제를 통한 정기적인 모임을 전제로 한다.
광주에서도 이런 흐름은 마찬가지다. 최근에는 독립서점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책”을 매개로 한 다양한 모임이 활성화되고 있다. 독립출판 분야에 관심이 많은 매니아들만 반응했던 예전과 달리 요즘에는 일반인들에게도 큰 호응을 받고 있다. 양림동에 위치한 책방 “메이드 인 아날로그” 에서는 주제별 다양한 독서모임을 진행하고 있으며 “양림쌀롱 여행자라운지”에서는 여행을 테마로 한 달에 2번씩 다양한 소규모 특강과 네트워크파티가 진행된다. 취향공동체들을 위한 온라인 플랫폼들도 활성화되고 있다. 독서모임을 위한 플랫폼 “트레바리(Trevari)”, 액티비티 등 레저활동에 특화된 “프립(Frip)", 여행지에서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마이리얼트립(My Real Trip)“ 등 알만 한 사람들에게는 이미 유명한 채널도 많다.
재미있는 점은 온라인 플랫폼을 기반으로 모임이 주관되는 오늘날의 취향공동체에서도 다시금 “면대면 커뮤니케이션(Face-to-Face Communications)”이 장려된다는 점이다. 짧고 간결한 정보전달이 유리해지면서 텍스트보다는 이미지가 중심이 된 온라인의 방식과 달리 직접 얼굴을 보고 자신의 텍스트를 공유하는 아날로그적 방식이 선호되는 것이다. 이는 시각적인 정보에 의존하던 기존의 디지털적 소통방식에 피로감이 반영된 결과다. 그러나 나이, 성별, 학력, 직업 등 사회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던 기준들이 필수적이지 않다는 온라인의 특징은 유지된다. 상대방의 사회적 지위나 신상정보 보다는 삶에 대한 “경험”과 “취향”의 공유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취향을 찾기 위해 시간과 비용을 들여 노력하고, 이를 타인과 공유하고자하는 특성은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청년들의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과도 연결된다. “다다익선”이 미덕이 되던 시대는 지났다. 오늘날 청년들은 집단의 가치보다는 개인의 가치를 우선하며, 소소하지만 확실하게 실현이 가능한 행복을 원한다. 사회적인 기준과 시선보다는 자신만의 경험으로, 개성으로 소통하고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강하다. 개인의 사적인 기호 정도로 취급되던 취미와 취향이 전문화되는 현상이 또 다른 상대적 빈곤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비판도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새로운 세대의 삶의 가치와 지향점이 달라지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먼 미래보다는 가까운 미래를 위해 투자하고 내일의 나보다는 현재의 나의 행복에 집중하는 삶, 내가 선택한 기준으로 나의 정체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청년들의 태도는 이제는 단순한 현상을 넘어 라이프스타일을 바꿀 하나의 문화로서 정착하고 있다. 새로운 세대의 이런 소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다양한 문화적 코드(Code)들이 콘텐츠에 반영되어야 하며 문화현장에서도 콘텐츠에 대한 평가 기준이 다양해져야 한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다다익선”이 절대적 기준이 되기에는 우리가 놓칠 것이 이제는 너무 많다.
*이 글은 전남일보 문화칼럼에 실린 필자의 글을 재편집하여 구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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