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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리가 함께 만든 세상이니까 - <이어즈&이어즈>

아티클

by kkot_b 2020. 4. 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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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코로나19는 시작일 뿐.
멸망으로 향하는 인류는 필연적일까

 

<이어즈&이어즈>예고편  (이미지출처 - 왓챠플레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자연재해나 핵전쟁보다 인류멸망의 첫 번째 시나리오로 오랜 시간 꾸준하게 제기된 것이 예측할 수 없는 전염병의 전 세계적 유행이었다. 조용하지만 빠르게 퍼지는 새로운 바이러스는 인간의 통제에서 벗어나 문명을 파괴하고 세계를 혼란에 빠뜨린다. 정해진 시간에 효과적인 백신을 만들어내지 못한 인간은 바이러스에 결국 붕괴된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온 세상이 멈춰버린 지금, 전염병으로 인한 인류멸망 스토리를 강조했던 전문가들의 경고가 새삼 놀랍다.  중세 유럽에서 약 3년간 무려 2천만 명의 사망자를 만든 흑사병(페스트)부터 역사상 가장 지독했던 유행성 인플루엔자로 불리는 스페인독감, 2003년 전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사스(SARS), 가장 최근에는 메르스까지 인류는 오랜 기간 전염병과 맞서 싸워왔다. 그리고 예방 방법 또한 시대가 갈수록 효과적으로 발전해왔다.

 

하지만 전염병의 발생 주기는 점점 짧아지고 유행 가능성도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다. 도대체 왜일까?


"지금 우리 꼴을 보세요"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적나라하게 그린 작품
<이어즈&이어즈>

<이어즈&이어즈>예고편  (이미지출처 - 왓챠플레이)

최근 왓챠플레이를 통해 개봉한 <이어즈&이어즈(Years and Years)>는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적나라하게 그린 작품으로 코로나 사태로 벌어지는 전 세계의 비상상황들과 오버랩되며 화제가 되고 있다. 한 칼럼니스트가 리뷰로 남긴 “2019년부터 2034년까지 15년간 세계가 순조롭게 망해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라는 추천이 정말 적절하다.

 

6부작으로 이루어진 이 드라마는 브렉시트 이후의 영국을 다루고 있으며 트럼프의 재선부터 난민추방, 도시봉쇄, 가짜뉴스(딥페이크영상범죄포함), 환경이슈, 트랜스휴먼(인간의 디지털화) 등 아주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불길한 일들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무섭지만 당장 내일이라도 뉴스에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이야기들 말이다.

 

참고로 1화는 중국을 향한 미국의 핵미사일 발사로 마무리된다.

 

"이건 사전 연습이 아닌 실제 상황이다."

 

<이어즈&이어즈>는 전염병을 인류멸망의 소재로 채택하지 않았지만, 절묘하게도 망해가는 그 모습이 비슷하다. 바로 지금 우리가 직면한 사회의 모습이다. 공포가 사회를 휩쓸고 개인 이기주의가 만연한다. 생사의 갈림길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숨은 이득을 챙기는 자들이 생겨난다. 젠틀한 겉모습에 가려져 있던 사회 곳곳의 혐오들이 수면 위로 올라온다.

 

계속되는 마스크 대란 (이미지출처 - pixabay)

유럽에서는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가, 한국에서는 중국인에 대한 혐오가 확산되었다. 불특정한 개인에게 가해지는 혐오범죄가 계속되며 불안과 공포가 전세계를 휩쓸었다. 전염병확산이 두려워진 불법체류자들이 자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자발적 신고를 하고, 난리통에도 난민들은 그 어느 곳에서도 보호받지 못한다. 입으로만 일하는 정치인들과 나만 아니면 된다는 이기주의의 팽배, 방역이라는 대의를 핑계 삼아 행해지는 크고 작은 폭력까지. 3배 이상 뛴 가격에도 구할 수 없던 마스크가 공적 마스크 보급 하루 전날부터 이곳저곳에서 슬쩍 판매되기 시작하는 최근 상황들은 드라마가 아니다. 우리는 지금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경험하고 있다. 이건 사전 연습이 아닌 실제 상황이다.

 

주인공이자 정치가로 등장하는 엠마 톰슨이 극 중 TV쇼에서 외친다.

“지금 우리 꼴을 보세요!”라고. 정말 꼴이 말이 아니다.


전염병의 역사와 함께 발전해 온 인류역사

 

오랜세월 전염병과 맞서 싸워온 인류의 삶 (이미지출처 - pixabay)

지금까지 인류는 놀라운 발전을 이루었고 수많은 위기들을 극복해왔다. 전염병도 마찬가지다. 인터넷의 발달로 보완감시체계는 물론 효과적인 정보공유 기술들이 발전하고 질병에 대한 교육과 전문인력을 확보하며 진단과 치료, 백신도 빠르게 진보했다.

 

하지만 인류는 100년 전과 비교했을 때 훨씬 더 많은 곳을 쉽고 빠르게 이동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여행한다. 야생에 조용히 살던 동물들이 이유 없이 전염병의 발병원이 되진 않는다. 공장형 축산방법이 인수간 전염병이 쉽게 퍼지는 환경을 만들고 무분별한 산림벌책이 바이러스 노출 위험을 높인 것처럼 인류는 언제나 새로운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나 역시 코로나 사태의 이 악몽이 끝나면 어서 빨리 어디든 떠날 수 있길 기도하고 있다. 어쩌면 끊임없이 도전하는 인간의 특성 때문에 우리는 필연적으로 멸망을 향해 가는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지금부터-
맞서 싸울것인가, 계속 방관할 것인가.
결국 우리가 함께 만든 세상이니까.

 

코로나 사태를 통해 우리가 겪고 있는 디스토피아적 미래체험기도 언젠가는 끝이 날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전 세계에 벌어진 이 끔찍한 비극 이후 직면하게 될 수많은 사회문제들에 당신이, 내가, 우리가 모두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이어즈&이어즈>의 결말이 서늘한 이유는 이 모든 불행을 누군가의 탓으로만 매도하며 방관한 수많은 보통 사람들을 콕 집어서 비판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함께 만들어낸 세상이다. 앞으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누군가를 위한 비난이나 불평뿐인 방관이 아닌 미래를 위해 함께 나눌 치열한 고민인 것이다.

 

*이 글은 전남일보 문화칼럼에 실린 필자의 글을 재편집하여 구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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